밑바닥에서 하늘을 보다
신앙에는 역설이 존재한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거리의 역설’이다. 하나님과 가장 가까이 있다고 느끼는 순간이 실은 가장 멀리 떨어져 있을 때다. 하나님으로부터 가장 멀리 있다고 생각되는 순간이 사실은 가장 가까이 있을 때다. 누가복음 18장의 바리새인과 세리의 이야기가 그 점을 보여준다.
바리새인은 자신만만했다. 토색, 불의, 간음을 행하는 자들과는 수준이 다른 자신을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일주일에 두 번 금식하며 온갖 소득의 십일조를 바치는 행위를 자랑했다. 백층짜리 빌딩 맨꼭대기에 하나님이 계신다면, 자신은 구십 구층쯤 되리라는 확신이 넘쳐났다.
반대로 세리는 내세울 것이 없었다. 할 말도 없었다. 고개를 들 수도 없고 입을 열 수도 없어 그저 주먹으로 가슴을 칠 뿐이었다. 애써 생각해낸 말이라곤 초라한 고백이었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나님이 백층에 계신다면, 자신은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져 있음을 세리는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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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면 기울고 기울면 차는 달
예수님이 최종 판결을 내리셨다.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갔느니라.” 너무 높아져 있던 바리새인에게는 굳이 은혜가 필요하지 않았다. 너무 낮아져있던 세리에게는 은혜 밖에는 기댈 것이 없었다. 너무 완벽했던 바리새인은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었다. 너무 부족했던 세리는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었다. 그토록 목마르게 하나님을 찾는 이에게 은혜가 임한다.
마음이 거지처럼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다. 신앙의 역설은 곧 인생의 역설이다. 가장 높이 올라간 순간, 내려감이 가까이 있다. 가장 낮게 내려간 순간, 바닥을 치고 올라감이 다가와 있다. 달이 차면 기우는 것이요 기울면 차는 것 아닌가.
일본 수상 나까소네가 등소평에게 물었다. 파란만장한 역정 가운데 가장 고통스러웠던 순간은 언제였느냐고. 작은 거인은 문화 대혁명 기간이라고 대답했다. 문화 대혁명은 아우슈비츠에 비견할 만한, 20세기 최대의 비극이다. 유소기와 등소평의 권력기반을 무너뜨리기 위하여 모택동이 인민해방군의 비호 아래 일반 대중을 동원하고 홍위병을 선동하여 일으킨 쿠데타다.
등소평은 일체의 직위를 박탈당한 채, 시골의 트랙터 공장으로 유배되었다. 그에게 붙여진 죄목 또한 희한했다. 1969년 국경에서 소련과의 무장충돌이 발생하자, 최고 지도자들 중에 적과 내통할 우려가 있는 인물들을 색출한다는 명목이었다. 건국 유공자요 재상이 하루 아침에 역적이 된 몰골이다. 65세의 노인은 트랙터 바퀴의 살을 끼우고 짐 싣는 화물칸을 용접으로 때우는 노동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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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양살이의 인간미
본인의 몰락보다 더 가슴 아픈 것은 가족들의 고통이었다. 아들과 딸들은 자본주의에 물든 독재자의 자녀라는 낙인이 찍힌 채 이곳 저곳 변두리에 버려졌다. 특히 장남 박방(撲方)은 홍위병에 의해 방사능에 오염된 실험실에 갇히게 되자, 탈출하려고 4층에서 뛰어내려 척추를 다치면서 평생 불구가 되었다.
등소평은 공장노동과 가사노동을 병행해야 했다. 늙은 유모, 병약한 아내가 처리하지 못한 일들을 도맡아했다. 장남을 목욕시키고 척추 마사지를 해주는 일 역시 그의 차지였다. 장남은 그 시절의 아버지를 회고한다.
“그때서야 비로소 나는 아버지가 오로지 정치에만 관심을 갖는 다른 지도자들과는 달리 진실한 인간이며 실재하는 인간임을 깨닫게 되었다.”
버려진 인생들의 가족애가 눈물겹다. 등소평의 딸 등용은 아버지에 관한 전기를 쓰기 위해 인터뷰한 이들이 한결같이 지적했던 점을 소개한다. 그것은 낙천적인 성격과 유머였다. 밑바닥에 내던져져서도 등소평은 웃음을 잃지 않았다. 격의없는 소탈한 태도와 뛰어난 유머 감각으로 그는 동료들로부터 깊은 사랑을 받았다. 솔즈베리의 책은 그들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그는 결코 위대한 국가 지도자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는 마치 우리 가운데 한 사람과 같았다.” 훈훈한 인정이 흐르는 달동네가 미소를 짓게 하듯, 등소평의 귀양살이에는 인간미가 풍겨난다. 하지만 그가 정작 만들어낸 것은 미담(美談)이 아니라 미래였다. 등소평은 매일 마당을 40바퀴씩 돌면서 체력을 단련했다. 동시에 밤늦게까지 독서에 몰두했다. 그 때 읽은 대표적 저작이 중국 역사 칠천년의 공식기록인 ‘24사(史)’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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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바닥에서 익힌 통치술
‘사기’로부터 시작해서 ‘청사’에 이르기까지, ‘24사’는 역사와 인간의 광대하고 심오한 파노라마다. 대륙의 통치자가 갖추어야할 고급 지식이기도 하다. 밑바닥에 내던져져서 그는 최고의 통치술을 연마한 것이다. 끝이 없을 것만 같았던 유배생활은 3년 4개월에 끝이 났다. 정계에 복귀하는 그의 가슴은 새로운 중국으로 차오르고 있었다.
이탈리아 기자 율리아나 팔라치와의 인터뷰에서 등소평은 말했다.
“내가 여러 차례의 치명타를 견디어 낼 수 있었던 이유는 낙관주의자이므로 실망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치란 대해 속의 파도와 같아서 사람들은 파도 위에 있을 때도 있으나 때로는 파도 밑에 깔리기도 한다.”
어디 정치만 그와 같으랴. 인생이 파도 위로 두둥실 띄어가기도 하고 파도 아래 휩쓸려 떠내려가기도 한다. 위에 있다고 교만할 까닭도 없고 아래 있다고 절망할 이유도 없다. 역설적으로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가 사실은 가장 배울 점이 많을 때이다. 가장 낮아질 때가 가장 높아질 미래를 준비할 때다. 몸은 바닥에 있어도 입으로는 웃고 눈으로는 하늘을 보아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