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오기>는 192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작품이다. 그 당시는 제목이 〈당옥이〉였고, 4연으로 된 시였다. 윤극영의 곡으로 더 유명한 이 동요는 일제강점기 때는 조선인의 애환을 노래했다고 금지당했다. 이 동요의 화자(話者)는 부모를 일찍 여의었나 보다. 대구(對句)를 맞추려고 그렇게 썼겠지만, 어머니는 '해돋는 나라'로, 아버지는 '달돋는 나라'로 가셨다. 이 부분에서 부모를 여읜 슬픔과 나라를 잃은 슬픔이 하나로 겹친다. 따오기 같이 사라진 것이 그리움을 부르고 애틋함을 키운다.
따오기는 동요로 유명하지만 실제로 이 새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머리와 몸통은 희고 부리는 검으며, 얼굴과 다리는 붉고 "과아 과아" 하고 운다. 습지에서 개구리나 민물고기를 주로 잡아먹으며 산다. 동북아시아에서는 흔한 새였지만 포식자에 대한 방어능력이 떨어져 개체 수가 급격하게 줄어 국제보호종으로 지정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이 새가 마지막으로 관찰된 것은 1979년 문산 부근 비무장지대에서다.
상심한 영혼이 보고 듣는 것은 다 상심한 듯한 게 인지상정이다. 이 동요에서 따오기 소리가 처량한 까닭은 그 소리가 상심한 경청자의 내면을 경유해 나오기 때문이다. 슬픔은 반향을 불러오고 그 반향은 슬픔을 넘어서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슬픔은 덜 여문 감정의 찌꺼기를 걸러내는 정화 효과가 분명하다. 우리 민족이 유독 슬픈 노래를 좋아하는 건 그 때문이다. 이 구슬픈 노래를 반복해서 부름으로써 시름은 덜고 맺힌 건 풀어냈던 것이다.
한정동(1894~1976)은 평안남도 강서 출신으로 신춘문예를 통해 나온 최초의 아동문학가다. 1918년 평양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평양시청의 서기를 거쳐 진남중학교 교사로 재직했다. 진남포에 영정초등학교를 세워 교장을 지냈지만, 한국동란 때 월남해서는 국제신문의 기자로 일했다. 경기도 시흥의 물왕저수지 주변에 시인의 묘비가 서 있고, 그 옆에 〈따오기〉가 새겨진 노래비도 서 있다.
시평 : 장석주·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