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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결혼 문화와 결혼 비용

풍월 사선암 2008. 2. 23. 16:29

[Why] '한국의 결혼 문화와 결혼 비용'

신혼부부 327쌍 설문조사

신혼부부 절반 정도는 집 마련할 때 부모 도움 받아


"100㎡(30평) 이상 돼야 살 만하다" 큰 아파트 선호

"집으로 돈 벌려는 생각은 포기… 오래 살 집 구하는 게 꿈"

 

'우리의 사랑만 있다면 단칸방이라도 행복하리라.' 사람들은 동화 같은 사랑 이야기를 동경하지만, 그렇게 사는 사람은 드물다. 단칸방에서도 행복한 삶을 이루는 이들도 있겠지만, 이들은 아스팔트의 틈새를 뚫고 피어난 풀꽃처럼 예외적이다. 콘크리트로 사방이 막힌 현대의 삶에서 결혼은 현실이고, 일상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갑남을녀(甲男乙女)들은 어떻게 집을 마련해 살아가고 있을까.


결혼정보업체 ㈜좋은만남선우 부설 한국결혼문화연구소는 2007년 결혼한 전국 327쌍의 부부를 이메일과 전화를 통해 설문 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한국의 결혼 문화와 결혼 비용'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2007년 결혼한 300여 쌍 부부들이 결혼해 가정을 이루는 데 쓴 비용 중 70% 정도를 집을 마련하는 데 썼다. 조사 대상 부부들이 평균적으로 지출한 결혼 비용은 1억7245만원. 이 중 신혼집을 마련하는 데 쓰인 비용은 평균 1억2260만원이었다. 기껏해야 서른 내외인 신혼부부들은 신혼집을 마련하는 데 필요한 1억원이 넘는 돈을 어떻게 마련했을까.

 

◆"신혼집 마련은 여전히 신랑(부모) 몫"


서울 노량진의 한시영(33·가명)씨가 살고 있는 다세대 주택의 전세금은 8000만원이다. 한씨의 남편(IT업체 직원)은 이 돈을 부모로부터 6000만원을 지원 받고, 은행으로부터 2000만원을 대출 받아 마련했다. 한씨는 "은행에서 빌린 돈은 다 갚았지만, 시댁에서 받은 돈은 아직 갚아나갈 계획이 없다"며 "시부모도 집을 마련할 때까지는 돈을 갚으라고 하지 않아서, 주택 구입비용으로 저축하고 있다"고 말했다.


많은 20·30대 신혼부부들이 집을 마련할 때 '부모님의 보살핌'에 크게 의존한다. 결혼문화연구소의 조사에 응한 신혼부부 300여쌍 중 50% 정도는 주택을 마련할 때 부모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을 받은 경우는 10분의 1 정도에 불과했다. 부모로부터의 간섭을 싫어하는 요즘 20·30대지만 결혼할 때만은 기꺼이 부모의 도움을 받고 있었다.


'집은 신랑이 마련하고, 살림은 신부가 마련한다'는 사회적 통념은 아직도 유효하다. 경기도 안산에 사는 조은영(29·가명)씨 부부가 사는 집의 전세금은 1억원이지만, 조씨가 보탠 돈은 없다. 조씨는 "집은 모두 남편(회사원)이 맡았고, 살림살이는 다 내가 준비하기로 했다"며 "결혼 준비할 때 시댁에서 돈을 준비하는 과정을 보며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주택을 구입하거나 전세 계약을 맺을 때 신랑 명의로 등기가 되는 것을 생각하면, 신랑 측의 부담이 신부 측에 비해서 월등히 무겁다고 보기는 어렵다. 주택 마련에 쓴 돈은 결국 부동산으로 남기 때문이다.


◆"신혼집도 100㎡(30평)은 돼야죠"


결혼문화연구소에서 조사한 2007년 신혼부부들의 집 마련 평균 비용은 1억2260만원. 이는 같은 연구소에서 2000년 조사한 신혼집 마련 비용인 4629만원 보다 2.5배 이상 늘어난 금액이다. 2000년부터 2007년까지 전국 집값 평균 상승률은 58%(통계청 주택가격지수 기준)인데, 왜 신혼집 마련 비용은 이렇게 많이 늘어났을까.


경기도 고양시에 사는 의사(레지던트) 송영식(31·가명)씨는 결혼한 지 9개월 만인 지난해 10월 110㎡(34평)대의 새 아파트로 이사했다. 송씨는 이사를 위해 6000만원을 은행에서 대출 받았다. 송씨가 매달 은행에 갚는 돈은 이자 포함 200만원. 송씨는 "전세금 대출을 갚느라고 연금보험 하나 말고 저축은 생각도 못 하고 있다"며 "(금전적으로) 무리이긴 해도 아이를 키우려면 방이 셋은 돼야 한다고 생각해서 이사했다"고 말했다.


신혼집 마련에 비용이 크게 늘어난 까닭은 신혼부부들이 더 '큰 아파트'로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3년 실시한 조사에선 전체 조사 대상 신혼부부 중 3분의 1 정도가 63㎡(19평)보다 작은 집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하지만 2007년 이 크기의 집에서 살림을 시작한 신혼부부는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대신 100㎡(30평)보다 더 큰 집을 신혼집으로 하는 비율은 전체의 6분의 1에서 3분의 1로 2배 이상 늘었다.


신혼집이 점점 더 커지는 근본적인 이유는 눈높이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신혼부부들 사이에 "최소한 100㎡는 돼야 살 만하다"는 인식이 퍼진 것. 지난해 7월 결혼해 인천의 50㎡(15평) 크기의 다세대주택에 사는 김미정(27·가명)씨는 "100㎡대의 집에서 살기엔 돈이 부족해서 아예 작은 집에서 살림을 시작하기로 했다"며 "여기서 생활비를 아껴 5년 안에 100㎡대의 집으로 가기로 남편과 계획을 잡았다"고 말했다. 김씨 부부는 한 달에 200만원 정도를 집을 마련하는 비용으로 저축하고 있다.


결혼 연령이 올라간 것도 신혼집이 커진 이유다. 지난해 초 결혼한 대기업 차장 김재현(38·가명)씨는 "30대 초반에 결혼했다면 70㎡ 정도의 집에서 시작했을 것"이라며 "지금 집은 신혼집치고는 좀 크지만, 결혼을 늦게 했기 때문에 나이에 맞는 집을 얻은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서울 수색동의 110㎡대 아파트에 전세로 산다.


20·30대는 나이가 들수록 수입이 늘어나기 때문에, 결혼을 하는 나이가 늦어진 만큼 경제적 여유가 생겨 신혼집이 커진 것이다.


◆ "집으로 투자요? 비싸서 못 해요"


지난 한 해 집값 오름세는 다소 수그러들었지만 세간의 부동산 불패 신화는 여전하다. 갓 결혼한 부부들은 집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서울 증산동에 사는 이재은(34·가명)씨는 "청약 제도가 바뀌면서 집으로 돈을 벌려는 생각은 거의 포기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지난해까지 1순위 청약자였지만, 가점제가 시행되면서 순위가 떨어졌다. 그는 "분양 받지 않고 집으로 재산을 불리려면 일단 집을 사야 하는데, 너무 비싸서 엄두를 못 내고 있다"며 "꾸준히 청약 순위를 올려서 나중에 오래 살 집을 구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많은 신혼부부들이 '집은 신혼부부가 재산을 불리는 수단으로 쓰기에는 너무 비싼 재화'라는 데 동의했다. 이런 모습은 통계에서도 드러났다. 2007년 조사 결과 부부 이름으로 집을 소유한 신혼부부는 2005년 조사보다 소폭 증가(32.1%→35.5%)했지만, 여전히 전체 신혼부부의 3분의 1 수준에 그쳤다.


신혼집을 구하지 않고 신랑 신부의 부모와 함께 사는 신혼부부도 조사 대상의 12%를 차지했다. 지난해 6월 결혼한 강인우(27·가명)씨도 서울 천호동의 단독주택에서 부모와 함께 산다. 강씨는 "아내와 장모가 이해를 해주긴 했지만, 최대한 빨리 집을 구해서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부모와 독립하지 않고 살아가는 부부들 중 상당수는 독립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보고서에 따르면 3998만원(조사 대상 신랑 연봉의 평균)을 기준으로 신혼부부들을 두 집단으로 나눠봤을 때, 신랑의 연봉이 낮은 부부들이 높은 부부들보다 부모·가족과 함께 사는 비율이 3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신혼살림도 양극화"


서울 사당동의 다세대주택에 전세 8000만원에 신혼살림을 마련한 장대원(33·가명)씨. 장씨 부부는 아파트는 너무 비싸서 포기하고 다세대주택을 구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07년 신혼집을 마련한 부부들의 3분의 1은 7000만원에서 1억원 사이의 집을 구했다.


집값에 2억원 이상을 지출한 경우도 전체 조사 대상의 5분의 1 가까이 됐다. 최고액은 8억원. 신혼집을 마련하는 데도 양극화 현상이 나타난 셈이다. 이런 현상은 집을 부부 이름으로 사들인 부부와 전·월세로 집을 얻은 부부들 사이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집을 구입한 신혼부부의 45%는 100㎡ 이상의 신혼집을 마련했지만, 전·월세로 신혼집을 마련한 부부들은 56%가 80㎡ 이하의 집을 얻었다.


만약 장씨 부부가 전세금 8000만원으로 수도권이 아닌 지역에서 방을 얻었다면 어땠을까. 경산에 사는 김수정(31·가명)씨는 "신혼집을 구하러 다닐 때 지방에 사는 게 행운이고 복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젊은 부부들에게 신혼집을 마련하는 것은 큰 부담이다. 김씨 부부는 경산에서 9000만원으로 100㎡ 아파트에 전셋집을 구할 수 있었지만, 서울 이촌동에서 집을 얻은 신혼부부는 그보다 작은 전셋집을 얻는 데 2억원이 들었다.


신혼부부들이 마련한 평균 집 크기는 수도권, 비수도권 모두 약 90㎡였다. 하지만 비슷한 크기의 집을 마련하는 데 든 평균 비용은 1억3854만원(수도권)과 9747만원(비수도권)으로 수도권이 40% 이상 돈이 더 들었다.


신혼살림으로 마련한 집의 크기는 미래의 주택 구매 전망에도 영향을 미쳤다. 63㎡ 이하의 집에서 결혼 생활을 시작한 부부들은 내 집 마련에 걸리는 시간을 평균 6년 4개월로 예상했다. 하지만 100㎡ 이상의 집에 신혼살림을 꾸린 부부들은 평균 3년 9개월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결혼문화연구소의 김우금 연구원은 "신혼집은 결혼 때의 경제적 능력을 보여주는 동시에 부부 경제생활의 종자돈"이라며 "미래 주택 구매 능력에 큰 영향을 준다"고 설명했다.

 

이인묵 기자  redsox@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