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원/애송시

설날 / 권영우

풍월 사선암 2008. 2. 6. 14:18

 

  

설날 / 권영우


뒤뜰 청솔 더미에서 목욕한 해묵은 석양이

동쪽 하늘 붉은 때때옷으로 치장하고

대청마루에 새해 복(福), 한 광주리를 걸어 놓는다


날마다 맞이하는 무덤덤한 햇살이

오늘 아침은

가난한 가슴에 부푼 꿈을 가득가득 안겨온다


섣달 그믐 묵은 때를 열심히도 벗기시던

어머니는

밤새도록 지극 정성 차례상을 준비하셨다

설빔하는 어머니 무릎에 누워

자지 않으려 용쓰다 깜박 잠든

새해 새 아침 설날 어둑새벽

개구쟁이 동생이 찬물에 세수하고

할아버지 할머니께 넙죽 세배를 드린다

큰 누나가 지어준 색동 주머니에

깜박깜박하시는 할머니의

손 때묻은 무지개 알사탕이

주머니를 두둑하게 채우는 오늘은 설날이다


소식 없는 대처의 둘째형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애끓는 정성이 담긴

떡국 한 그릇

삼신할미에게 공양 되는 오늘은 설날이다


동네 어귀를 들어오지 못해 망설이던

떠돌이 새가

하얀 눈밭에 걸린 청솔가지에서 밤새 울다가,

일 년 365일 눈물로 지새운

어머니 치마폭에 용서를 비는 오늘은 설날이다


그렇다, 먹지 않아도 배부르고

모든 걸 용서해주고 용서받고

그리운 가족 사랑을 주고받으며

정겨운 희망의 닻을 올리는 오늘은 설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