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양식/시사,칼럼

[이슈추적] “종부세, 괴롭다 못해 무섭다”

풍월 사선암 2007. 12. 11. 08:25

[이슈추적] “종부세, 괴롭다 못해 무섭다”


달랑 집 한 채에… 세금 내느라 연금 쪼개고 빚내고

대상자 늘고 세액 2~5배 올라 · 1주택자·은퇴자들 “생계 위협”

“누구 말대로 강남 사는게 고통”


지난 6일 오후 서울지방국세청 강남합동청사. 역삼, 삼성, 서초세무서가 함께 들어 있는 곳이다. 개포동과 대치동 신고센터가 개설된 5층의 경우 25명의 세무서 직원들이 앉아 있었다. 그러나 종부세를 내러 온 납세자들은 2~3명에 불과했다.


한 70대 할아버지에게 “종부세가 얼마나 되시느냐”고 물었더니 “왜? 대답하면 깎아주나? 화 나니까 묻지 마라. 정말 못 살겠네…”라며 벌컥 화를 냈다. 한 중년 남성은 “1가구 1주택도 종부세를 낸다는 게 이치에 맞느냐”면서 “종부세 폭탄 맞아서 노무현 대통령 말대로 강남 사는 게 고통이 됐다”고 말했다.


2005년부터 시행된 종부세 제도는 부동산 시장 안정이라는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왔지만, 투기와는 무관한 선의의 피해자를 양산했다. 특히 지난해부터 주택 종부세 과세 기준을 당초 9억원에서 6억원으로 낮추면서 대상자가 급격하게 늘고 종부세 세액도 크게 늘었다.


올해 종부세는 지난해보다 대상자는 13만5000명, 세액은 1조1287억원이나 늘었다. 종부세 대상자들 대부분이 작년보다 2~5배 이상 종부세를 내야 할 처지다. 곳곳에서 “종부세가 과중하다”는 아우성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 9일 오전 자택에서 만난 정기영씨는“이 집을 한번 둘러보세요. 종부세 452만원이 말이

되는지” 라고 했다. 그는“직장생활하면서 어렵게 마련해 가족들하고 살아온 아파트는 고향이나

마찬가지 아니냐”면서 “종부세는 고향에서 쫓아내려는 세금인 모양”이라고 했다.

 

◆“달랑 집 한 채뿐인데…”

서울 대치동의 105.6㎡(32평) 아파트에 산다는 김모(여·50)씨는 “작년에는 공시가격이 6억원에 못 미쳐 종부세를 안 냈는데 올해는 내게 됐다”면서 “나 같은 1가구 1주택자에게 종부세를 내라는 게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씨는 “미룬다고 깎아줄 것도 아니고 17일까지 내면 3% 깎아준다니까 그거라도 혜택받으려면 제때 내야지 별수 있느냐”고 말했다.


서울 반포에 105.6㎡(32평) 아파트를 갖고 있는 회사원 최모(40)씨도 집 한 채가 거의 전 재산인데 종부세가 두 달치 월급인 600만원이 나왔다. 그는 “15년 전부터 살고 있는 아파트인데 집이 노후화돼 재개발 얘기가 나오면서 집값이 뛰었다”면서 “내가 뭘 잘못했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정부 관료들이 ‘종부세 부담스러우면 강남에서 이사 가면 되지 않느냐’고 하는데 종부세에 맞춰서 살 곳을 찾으라는 게 말이 되느냐”고 했다.


개인 주택분 종부세 대상자의 38.7%인 14만7000가구는 부동산 투기와 무관하다고 할 수 있는 1가구 1주택자이다.


◆은퇴자들, “연금 쪼개서 종부세 내란 말이냐”

소득이 없는 은퇴자들은 더욱 울상이다. 서울 서초구 반포 주공아파트 138.6㎡(42평)에서 20년째 살고 있는 장모(66)씨는 최근 816만원이 찍혀 있는 종부세 신고서를 받았다. 그는 “30년간 공직 생활을 한 뒤 은퇴하고 남은 것은 이 집하고 매달 250만원 정도 되는 연금이 전부”라며 “지난해 374만원도 은행 대출을 받아서 냈는데 올해는 또 어떻게 하라는 말이냐”고 했다.


서울 도곡동 168.3㎡(51평, 공시가격 19억8000만원) 아파트에 사는 퇴직자 김모(67)씨는 “마누라가 1500만원의 종부세 신고서 받은 날 속 터진다고 양재천 나가서 한참 동안 찬바람 맞고 오더라”고 전했다. 그는 “은행 대출이자가 매달 160만원씩에, 종부세에, 각종 공과금 내면 ‘이러다 집 한 채 있는 것 다 털리지’ 하는 생각밖에 안 든다”고 말했다. 그는 도곡동 아파트 13평에 연탄 때면서 83년부터 살다가 재건축으로 평수를 늘려 입주했다고 전했다.


◆“우리 같은 사람도 내야 하나…”

서울 개포동 주공 아파트에서 23년째 살고 있는 정기영(58)씨는 “주공 아파트 원주민(原住民)이라고 할 수 있는 우리한테도 종부세를 걷겠다는 정부가 무섭다”고 말했다.


그가 내야 할 종부세는 452만원으로 지난해 87만원의 5배 이상으로 늘었다. 그의 집은 공시가격 10억원짜리지만 61.57㎡(18평)이고 그의 전 재산에 해당한다.


그는 중소기업에서 24년간 운전 기사로 근무하다 퇴직, 지난 3월부터는 지방의 한 고등학교에서 운전 기사로 일한다. 그는 “상해보험을 든 게 있어 담보로 대출 신청을 했더니 150만원까지만 된다고 한다”며 “나머지 300만원은 어디서 구할지 막막하다”고 했다.


이진석 기자 / 금원섭 기자 / 입력 : 2007.12.10

 

 

1가구 1주택 18평짜리 아파트에 종부세 480여만원이 부과된 정기영(58)씨.

서울 개포동 그의 집을 찾아 직접 이야기를 들어봤다. /오종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