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원/명상글

아침의 명상-꽃과 열매 사이

풍월 사선암 2007. 9. 15. 15:30
 

아침의 명상-꽃과 열매 사이

 

무릇 군자가 화려한 꽃을 싫어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꽃이 크다고 해서 반드시 그 열매가 맺히는 것은 아니니

모란과 작약이 바로 이것이다.

모과의 꽃은 목련만 못하고, 연꽃의 열매는 대추나 밤만 못하다.

심지어 박꽃은 더욱 보잘것없고 초라하여

뭇 꽃에 끼어서 봄철을 아름답게 하지도 못한다.

그러나 그 넝쿨은 멀고도 길게 뻗어 가며

박 한 덩이의 크기는 여덟 식구를 먹일 만하고,

한 바가지의 박씨는 백 이랑의 밭을 박잎으로 덮이게 할 만하고,

박을 타서 그릇을 만들면 두어 말의 곡식을 담을 만하니,

꽃과 열매는 과연 어떠한 것인가.

 

夫君子之惡夫華何也 華大者未必有其實

牡丹芍藥是也 木瓜之花 不及木蓮 菡萏之實

不如棗栗 至若瓠蓏之有花也 尤微且陋 不能列羣芳而媚三春

然其引蔓也遠而長 其一顆之碩 足以供八口 其一窩之犀 足以蔭百畝 刳以爲器

  則可以盛數斗之粟 其於華若實 顧何如也 (「李子厚賀子詩軸序」)


솥은 검어도 밥은 검지 않다.

밥을 짓는 데 무슨 화려함이 필요하리요.

비록 생긴 건 볼품없으나,

솥이 밥을 구수하게 지을 수 있는 것은 그의 질박함이 온전하기 때문이다.

화려한 꽃은 열매가 약하고, 열매가 실한 것은 꽃이 별로다.

이처럼 하늘은 사물에게 양쪽을 다 주지 않았다.

그러나 삶에 있어 진정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말 하나에도 꽃 같이 화려한 말 있고,

열매 같이 순후한 말이 있다.

유혹하는 달콤한 말이 있는가 하면, 질정하는 매운 말이 있다.

어디 말뿐이랴.

인간사 뭇 일들에는 이처럼 화려한 꽃의 대상과

순후한 열매의 대상들이 수없이 점철되어 있다.

 

겉은 화려해도 속이 빈 사람이 있고,

겉은 밋밋한 듯 하여도 속이 실한 사람이 있다.

외모는 수려하나 일이 서툴거나 성실하지 못하면

계속 함께 일하는 것이 곤혹스럽다.

약속의 언약은 아름다웠으나, 진실한 이행은 심히 천박한 사람도 있다.

명성은 대단한데 실질은 그만 훨 못한 것도 많다.

보기에는 멋있는 집이었으나 비가 새고 시설도 부실한 집이 있고,

멀쩡해 보이는데 비가 좀 왔다고 무너지는 다리도 있다.

보기엔 맛있어 보이는데 먹어보면 썩은 사과도 있고,

생긴 건 영 시원찮으나 먹으면 약이 되는 것도 있다.

늘 그렇듯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