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원/생활글

어느 어머니의 일기

풍월 사선암 2007. 7. 24. 16:03

 

           어느 어머니의 일기


    미안하구나, 아들아.

    그저 늙으면 죽어야 하는 것인데...

    모진 목숨 병든 몸으로 살아

    네게 짐이 되는구나.

    여기 사는 것으로도 나는 족하다

 

    그렇게 일찍 네 애비만 여의지 않았더라도

    땅 한평 남겨 줄 형편은 되었을 터인데

    못나고 못 배운 주변머리로

    짐 같은 가난만 물려주었구나.


    내 한입 덜어 네 짐이 가벼울 수 있다면

    어지러운 아파트 꼭대기에서

    새처럼 갇혀 사느니 친구도 있고

    흙도 있는 여기가 그래도 나는 족하다.

    내 평생 네 행복 하나만을 바라고 살았거늘

    말라비틀어진 젖꼭지 파고들던 손주 녀석

    보고픈 것쯤이야 마음 한번 삭혀 참고 말지.

 

    혹여 에미 혼자 버려두었다고

    마음 다치지 마라.

    네 녀석 착하디착한 심사로

    에미 걱정에 마음 다칠까 걱정이다.

    삼시 세끼 잘 먹고 약도 잘 먹고

    있으니 에미 걱정일랑은 아예 말고

    네 몸 건사 잘 하거라.


    살아생전에 네가 가난 떨치고 살아 보는 것

    한번만 볼 수 있다면

    나는 지금 죽어도 여한은 없다.

    행복 하거라. 아들아.

    네 곁에 남아서 짐이 되느니

    너 하나 행복할 수만 있다면 

    여기가 지옥이라도 나는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