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정병준 사우 >
양강도 삼지연군과 중국 지린 성[吉林省]에 걸쳐있는 산.
높이 2,750m로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중국 지린 성 안투 현[安圖縣] 얼다오바이허 진[二道白河鎭]과의 국경을 이룬다. 해방 당시까지 최고봉은 병사봉(2,744m)으로 측량되었으나, 현재는 장군봉으로 이름이 바뀌고 해발고도도 2,750m로 다시 측량되었다. 북동에서 남서 방향의 창바이 산맥[長白山脈]과 북서에서 남동 방향의 마천령산맥의 교차점에 위치하는 화산이다. 화산폭발에 의해서 덮인 부석(경석이라고도 함)이 회백색을 나타내며, 꼭대기는 1년 중 8개월 이상 눈에 덮여서 희게 보이기 때문에 백두산이라 부른다. 중국에서는 창바이 산[長白山]이라고 하며, 만주어로는 '귀러민산예아린'이라고 부르는데 '귀러민'은 길다(長), '산예'는 희다(白), '아린'은 산을 의미한다.
문헌에 나타난 백두산 최초의 이름은 〈산해경 山海經〉에 불함산(不咸山)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역사의 흐름 속에서 단단대령(單單大嶺)·개마대산(蓋馬大山)·태백산(太白山)·장백산(長白山)·백산(白山) 등으로 불렸다. 한국의 문헌에서 백두산에 관한 기록은 일연(一然)의 〈삼국유사 三國遺事>기이편에 태백산(太伯山)이란 이름으로 처음 나타나며, <고려사〉에도 "압록강 밖의 여진족을 쫓아내어 백두산 바깥쪽에서 살게 했다"하여 '백두산'의 명칭이 문헌상에 처음 기록되었다. 한민족이 백두산을 민족의 성산(聖山)으로 본격적으로 숭상한 것은 고려시대 태조 왕건의 탄생설화부터라고 추정된다.
백두(白頭)라는 이름은 성해응(成海應)의 〈동국명산기 東國名山記〉, 이유원(李裕元)의 <임하필기 林下筆記>등의 문헌에 의하면 백두산의 산정이 눈이나 백색의 부석(浮石)으로 4계절 희게 보여서 희다는 뜻의 '백'(白)자를 취하여 이름한 것으로 보인다.
백두산의 범위는 천지 중심의 마그마 활동에 따른 화산암의 분포지로 한정해보면 현재 북한측의 면적은 8,000㎢로 전라북도의 면적(8,052㎢)과 비슷하고 개마고원의 일부가 된다. 그러나 중국측의 백두산 화산암의 분포지까지 합하면 3만㎢에 이른다. 또한 해발고도 1,800m까지는 완만한 경사(8~12°)를 나타내어 방패 모양의 순상화산이나, 1,800~2,500m는 급경사로 종 모양의 화산을 이룬다. 백두산의 중앙부에는 천지가 있으며, 그 주변에는 2중화산의 외륜산에 해당하는 해발고도2,500m 이상의 봉우리 16개가 천지를 둘러싸고 있는데 모두 회백색의 부석으로 덮여 있다. 이 가운데 6개 봉우리는 북한에 속하며(최고봉 2,750m의 장군봉), 7개는 중국에 속하고(최고봉2,741m의 백암봉), 3개의 봉우리는 국경에 걸쳐 있다. 따라서 천지 수면에서 장군봉 꼭대기까지는 600m의 비고로, 백두산 중앙부는 넓고 파란 호수주변에 비고 약 500m의 회백색 산봉우리들이 둥그렇게 둘러 있어 아름다운 경관을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