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미터법’만 쓰라니… 국민은 “헷갈려”
법정계량단위 강제적용 혼선 / 29평 아파트, 금반지 1돈이 아직은 편한데…
공청회 한번 안열어 국민들 상당수 몰라 / 어기면 과태료 50만원… 업자들도 난감
‘40형’ ‘32타입’ 국적불명 표기까지 등장
4일 오후 서울 종로4가에 자리한 M귀금속 전문점. 최모(여·34)씨가 돌 반지를 주문했다. “금 1돈반으로 해주세요.”
주인 김모(61)씨는 “세공비 합쳐 15만원”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전자계산기를 두드려 계산을 끝낸 뒤 ‘금 18K 5.625g’이라고 썼다. 그러자 최씨는 “선물 받는 사람이 쉽게 알 수 있도록 ‘돈’으로 표시해 달라”고 말했다.
김씨는 “적발되면 벌금을 물어야 한다”며 괄호 안에 ‘1돈 반’이라고 쓴 뒤,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 보여주지 말라”고 당부했다.
정부가 이달 1일부터 도입한 국제미터법을 기준으로 한 법정계량단위가 곳곳에서 혼선을 낳고 있다. 소비자들은 정부의 미터법 시행 취지와 방향에 긍정은 하면서도 당장 시행하려니 여전히 헷갈린다는 입장이다.
▲ 7월부터 평·돈·근 등 비(非)법정 계량단위의 사용이 금지되면서 서울 방이동의 한 부동산
중개업자가 시세표의 면적 단위를 평에서 제곱미터(㎡)로 바꾸어 붙이고 있다.
산업자원부는 지난 1961년 도입된 미터법 기준을 강제적으로 적용키로 하고, 이달 1일부터 대기업과 공공기관, 귀금속 판매상 등을 상대로 미터법 준수에 대한 단속을 실시하고 있다. 위반시 5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산자부는 “평(坪), 돈은 수치를 정확히 잴 수 있는 도구가 없어 소비자들이 상거래시 피해를 입을 우려가 있다”며 “미터법으로 단일화해 가는 국제 추세에도 맞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나 실제 상거래 현장에서는 소비자들이 새 제도 도입 사실을 알지 못해 평, 근(斤), 돈 등 전통 계량 단위를 그대로 쓰고 있다. 업체들도 영수증이나 안내판에는 미터법으로 표시하지만, 고객에게 설명할 때는 기존 단위를 사용한다.
이에 대해 홍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많다. 산자부는 제도 도입에 앞서 공청회조차 열지 않았다. 전문가들 사이에 ‘또 다시 미터법 정착에 실패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상당수 국민, 시행 사실 잘 몰라
미터법을 표준 계량 단위로 규정한 ‘계량에 관한 법률’은 지난 46년간 제대로 시행되지 못했다. 2~3차례 대대적인 미터법 도입 움직임이 있었지만 기존 단위에 익숙한 국민들의 관습을 뛰어 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산자부는 오는 2010년까지 부동산에서 널리 쓰이는 ‘평’과 귀금속 거래에서 사용되는 ‘돈’만이라도 바꾸기 위해 강제 단속을 하기로 한 것. 정부는 혼란을 줄이기 위해 지난해 10월부터 라디오 광고와 일선 업계 관계자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 안내 스티커 배포 등을 실시했다. 그러나 상당수 국민은 법정 계량단위 도입 사실을 모르고 있다. 전국 백화점이나 일반 귀금속 거래상에서는 직원들이 그램(g) 단위로 설명하면, 고객들은 전통 계량 단위로 환산해 설명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신세계 백화점 관계자는 “직원 교육도 실시하고, 안내 광고에도 센티미터나 제곱미터로 표시하고 있지만 고객은 여전히 어색하고 불편해한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 일대에 밀집한 금은방에서도 외부로 ‘돈’ 단위를 표시하지는 않지만, 고객 상담 과정에서는 여전히 돈 단위를 쓰고 있다.
인터넷 쇼핑몰에서도 아직 에어컨 등을 표시할 때 12평, 6평 등 평이라는 단위가 일반적으로 쓰이고 있다.
◆‘40형’‘32타입’ 암호 같은 숫자
부동산 업계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중개업소들은 매장 앞쪽에 붙여둔 매매 정보를 평형 단위에서 제곱미터(㎡) 단위로 고쳤지만 고객과 상담할 때는 평형 단위를 그대로 쓴다. 분당 림방공인 박왕희 사장은 “손님이나 중개업자나 도량형 단위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정부에서 미터법을 쓰라는 지침이나 홍보 전단을 받은 적도 없다”고 말했다.
웃지 못할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평형이나 인치 등 사용이 금지된 단위를 뺀 암호 같은 숫자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최근 수도권에 견본주택을 연 A건설사는 미터법과 함께 ‘타입’이라는 단위를 병기했다.
기존 ‘32평형’을 ‘32타입’으로 표기하는 식이다. 삼성전자도 TV 안내 책자에 ‘40형(101㎝)’ 식의 표기를 쓰기로 했다. 40인치에서 인치를 뺀 채 쓰는 것이다. A건설사 관계자는 “업체로서는 과태료 납부보다 고객 불편을 덜어 주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최유식 기자 finder@chosun.com
이성훈 기자 inout@chosun.com
입력 : 2007.07.05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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