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원/좋은글

다 채우지 못한 친구의 빈잔

풍월 사선암 2007. 2. 24. 23:36
      다 채우지 못한 친구의 빈잔 올해도 어김없이 명절은 돌아왔고 친구들도 함께였습니다. 안보면 보고 싶고 모이면 즐거운 고향 친구들, 그 친구들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서 참 든든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얼마전 사고로 떠나버린 친구의 빈자리는 너무나 큰 아픔으로 다가왔습니다. 그 녀석이 떠난 날 비가 너무나 많이 내렸고 모두가 잠든 새벽 서른여덟의 생명을 놓아야 했습니다. 무참한 뺑소니사고에게 말입니다. 그렇게 떠난지 100일이 조금 넘었습니다. 생명이 있는 아이들의 백일은 축복이고 감사이며 감동 그 자체이지만 친구의 100일은 너무나도 큰 아픔이며, 그리움이 사무치는 날이었지요. 친구를 좋아함을 넘어서 친구들을 만나면 행복했던 사람, 근데 저는 이 친구에게 빚을 졌습니다. 술을 좋아하지 않는 저와는 반대로 술을 좋아하는 친구를 깊게 가까이 하지 않았었습니다. 깨복쟁이 친구이면서 단 둘이서 술잔을 기울여 본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친구의 영정 앞에서 술을 따르게 될 줄이야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너무나 죄스러워 눈물도 못 흘렸습니다. 아니, 눈물 흘릴 자격이나 있겠습니까? 아무리 후회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너무나 아까운 젊을을 두고 가야 했던 친구는 얼마나 떠나가기가 힘들었까요? 백여일의 시간이 지났지만 뺑소니 피의자를 잡지 못했습니다. 그 날 목포에서 여러 번의 뺑소니 사고가 있었지만 유일하게 이 사고 만이 증거가 단 하나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목격자에 의하면 사고를 낸 후 바로 차량 라이트를 끄고 사라졌다고 합니다. 어두운색의 자가용 같다는 진술 밖에 확보된게 없습니다. 뺑소니는 범죄 중에서 가장 무거운 범죄입니다. 평생을 죄책감에 시달리며 사느니 자수하는 것이 망자와 그 어머니와 주위 사람들의 한을 조금이나마 풀어주는 길일 것입니다. 길가에 핀 코스모스를 보면 어릴적 추억 속에 피어 있는 고향 생각이 났었지만 이제는 눈이 아프도록 친구가 보고 싶어집니다. 다 피우지 못한 삶을 그 곳에서라도 활짝 피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은 눈에서 멀어지면 맘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이 있지요, 눈에선 멀어졌지만 맘에서는 멀어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무리 세월이 약이다고 한들 다 따르지 못한 친구의 빈잔을 내릴 수가 있겠습니까? 친구야! 미안하고 죄스럽다는 말밖에 없어. 이번에 엄마 뵙고 왔어. 그래, 당연하지. 다들 갔었어, 엄마가 좋아하시는 막걸리 사들구 말야. 나도 사발로 두 잔이나 마셨다? 네 말대로 막걸리는 한 참 후에 올라오더라. 그리고 예전에는 미쳐 몰랐는데 참 맛있고 시원하더라. 엄마 모르시게 네 사진도 보고 왔어. 활짝은 아니지만 웃고 있는 너를 보니깐 더 그리운거 있지. . . . 이글은 MBC라디오 지금은 라디오시대에서 스크랩한 글입니다.